비키니의 역사는 기원전 56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시대의 경쟁적인 운동 경기에서 비키니와 같은 옷을 입은 여성들을 묘사한 삽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이다.
1930년대 초반부터 이미 투피스 수영복을 입었던 여성들이 있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비키니는 1946년 7월 5일에 처음 등장했는데, 프랑스의 기술자인 루이 레아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물자 배급으로 일부 영향을 받아 미셸린 베르나르디니가 모델로 출연한 현대 비키니를 선보였다. 레아르는 전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진행되었던 비키니 환초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에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의 여성들이 이 디자인을 반기는 한편, 로마 가톨릭교회, 일부 언론, 대중 대다수에서는 처음에 이 디자인이 다소 외설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받아들였다. 1951년에 열린 제1회 미스 월드 미인 대회에서는 참가자들이 비키니를 입었지만, 이후의 모든 미인 대회에서 한동안 착용이 금지되었다. 1953년 칸 영화제 기간에는 프랑스의 여자 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리타 헤이워스,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다른 여자 배우들도 비키니를 입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에 이 디자인은 《플레이보이》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하면서 더욱 공신력을 갖게 되었다. 우르줄라 안드레스는 1962년에 개봉된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살인번호》에서 상징적인 하얀색 비키니를 입고 파도에서 나오는 모습을 선보이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라켈 웰치는 1966년에 개봉된 영화 《공룡 100만년》에서 사슴 가죽 비키니를 입고 등장해 세계적인 섹스 심볼로 떠올랐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으로 회자되었다.
비키니는 점차 서양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패션 사학자 올리비에 사야르드는 전 세계적으로 비키니가 가장 사랑받는 여성 수영복이 된 이유에 대해 “패션이 아니라 여성이 가진 힘”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수영복의 해방은 항상 여성의 해방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2] 2000년대 초반까지 비키니는 세계 각지에서 연간 8억 1,100만 미국 달러를 벌어들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했고, 비키니 왁싱, 일광욕과 같은 파생 서비스도 덩달아 성장했다.